서상혁 VIP동물의료센터 원장

“우리 유치원 아이들에게 시간 좀 내줄 수 있나?” 친한 친구에게서 부탁전화가 왔다.
유치원 교사인 친구는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주제로 생명에 대해 무엇인가 느끼게 해주고 싶었고 수의사인 필자를 찾았던 것이다. 

당시 필자가 근무하고 있던 병원에서는 ‘글로리’라는 골든리트리버를 키우고 있었다. 골든리트리버 특유의 품성처럼 글로리 역시 침착하고 따뜻하며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반려견이었다. 글로리를 한참 바라보다가 그윽한 눈빛에 끌려 살포시 껴안았다. 글로리의 심장박동이 전해지는 순간 아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 알 것 같았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청진기를 채워주고 글로리의 심장박동소리를 들려줬다. 자신과 같은 소리의 심장박동이 청진기를 따라 아이들의 귓속으로 들어갔다. 까르륵거리며 무척이나 신나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아이들이 글로리의 심장박동을 듣던 그 순간 아이들의 표정변화가 15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은 살아있음의 근거다. 몸이 필요로 하는 산소요구량을 충족시키기 위해 심장박동수가 조절된다. 운동 이후 심박수가 증가하는 이유는 근육의 산소소비가 증가했기 때문에 심장에서 더 많은 혈액을 근육으로 내보내기 위해서다. 몸으로 보내는 피의 양은 심장이 수축했을 때 뿜어지는는 박출량과 심박수에 비례해 증가한다. 즉 수축력이 강하거나 심박수가 증가해야 몸으로 보내는 피의 양이 증가한다. 

심장병이 있으면 심장의 박출량이 부족해진다. 가장 흔한 판막질환의 경우 판막이 완전히 닫히지 못해 상당한 혈액이 전신으로 박출되지 못하고 역류해버려 박출량이 줄어들고 어딘가가 좁아지는 심장병의 경우에도 충분한 혈액이 나가지 못해 박출량 감소로 이어진다. 

심장병이 있어 박출량이 부족하면 결국 순환되는 혈액량을 유지시키는 방법은 심박수를 늘리는 것이다. 몸에서는 산소가 부족하다고 심장에 지속적으로 피를 보내달라고 요청하는데 박출량이 줄다보니 심박수를 올리게 되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일정수준까지는 심박수가 빨라지면 순환혈액량이 증가하지만 심박수가 너무 빨라지면 심장이 피를 머금는 시간이 매우 짧아져 오히려 뿜어져 나가는 피가 줄어든다. 즉 지나친 심박수 상승은 순환혈액량의 저하를 불러온다. 

또 과도한 심박수 상승은 심장을 지치게 만들어 심장기능을 더욱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심장병이 말기로 진행되면 몸에서 계속 산소를 요청하지만 더 이상 심장이 박동수나 박출량을 늘릴 능력을 잃게 돼 점차 심박수가 감소한다. 

정리하자면 ▲심장병으로 인한 박출량 저하는 심박수 증가를 불러온다 ▲지나친 심박수 증가는 오히려 순환혈액을 더욱 감소시킨다 ▲심장병 초·중기에는 심박수가 증가하지만 말기가 되면 심박수가 점차 떨어진다는 내용이다. 

심박수 증가는 몸에 산소가 부족하다는 증거다. 심박수가 빠른 환자가 과격하게 운동하면 금방 지친다. 따라서 현재의 심박수가 빠른지 느린지에 따라 환자상태를 예측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심박수를 조절하는 약물을 처방할 수도 있다. 안정상태에서 심박수가 빠르다면 박출량이 감소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어 약물을 조절하는데 있어 심박수는 심장병환자에게 매우 중요한 지표가 된다. 

병원에서는 동물들이 항상 흥분한 상태이기 때문에 원내에서 측정한 심박수는 신뢰하기 어렵다. 심장병이 있는 동물을 키우고 있다면 집에서 정기적으로 심박수를 측정하고 그 결과를 병원방문 시 꼭 수의사에게 보여주자. 심장병 동물을 키우는 보호자의 심박수에 대한 관심은 반려동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